합격수기

안녕하세요! EBS 26기 이상준입니다. 2019.04.08


안녕하세요. EBS 26기 이상준입니다.
 
워낙 끼 유전자도 없고, 그냥 점잖고 차분하기만 한 가정이라 가족, 친척 중에서는 아무도 제가 성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을 거예요.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집안의 반대를 받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응원이나 격려를 받아본 적은 없기에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그리고 제 자신을 보면서 여전히 꿈과 현실의 경계를 걷는 듯한 기분입니다.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잠에서 깨게 될까봐 정말 겁이 났고, 너무 충격적인 결과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은 메스껍기까지 했습니다. 전 아직 합격의 기쁨을 온전히 음미하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성우 준비를 열심히 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를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만이 아시겠죠. 애니 속 열정적인 캐릭터처럼 열정을 불태우면서 공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쓸데없이 생각만 많은 저는 계속 의심하고 고민하면서 준비를 해왔습니다. 실은 이번 EBS 시험은 공식적으로는 저의 마지막 성우 시험 도전이었습니다. 준비한 시간이 물론 아까웠지만,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 비해 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었기에 포기하는 것도 인생에 대한 책임감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인생에서 밥벌이처럼 신성한 일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꿈'이기만 했다면 성우 준비를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포기하려는 마음도 갖지 않았을 거고요. 이번에 떨어졌어도 계속 준비했을 거예요. 저에게 있어서 성우가 된다는 것은 목소리를 통해서 가치 있는 밥벌이를 해나가며 삶의 의미를 채워가는 것이었습니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EBS 성우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에게 감사한 선물이, 책임감이 주어졌다는 생각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신성하고 아름다운 노동으로서 성우의 일을 해나가려 합니다. 지망생 때보다 더 열정을 내어서 도전해 가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성우가 되도록 꾸준한 여정을 계속 가보겠습니다.


보투보 일편단심인 저는 네 분의 선생님께 수업을 받았습니다. 김지혜 선생님께는 사실 아주 잠깐 동안만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때 제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내 목소리란 무엇이고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막연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강렬한 카리스마로 어설프게 흉내내보던 저의 시늉을 연기로 바꾸어가는 첫 길을 터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만들어주신 보투보라는 공간은 지방생들에게 양질의 둥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지망생들을 생각하며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 주셨기에 저도 꾸준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점에 가장 감사를 드립니다.


내레이션과 막연한 '연기'만을 생각하고 학원에 왔던 저에게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가르쳐 주신 분은 장은숙 선생님이었습니다. 더빙 연기에 대해서 아직 낯설고 감이 잡히지 않을 때 그 매력을 직접 보여주시고 심장을 뛰게 해주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했던 EBS 작품들은 제 더빙 연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EBS에 와서 직접 그런 더빙들을 해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합니다. 대학 시험과 졸업 준비가 좀 벅차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쉬게 되었었는데 그게 아직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윤승희 선생님은 다시 본격적으로 성우 준비를 시작해 보려는 저에게 큰 위로와 용기, 자신감을 주신 분이십니다. 졸업 후 취준생이라는 가장 애매한 신분으로 성우를 준비해가는 일이 쉽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공부를 하면서도 부족한 실력과 상황에 불안함을 많이 느꼈는데 승희쌤은 따뜻한 온탕처럼 저의 목소리와 도전을 긍정해 주셨고 가능성을 발견해 주셨습니다. 아마 시기상으로는 제일 흔들거리는 때였을 텐데 이때 저를 잡아 주신 선생님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ㅜㅜ


이동훈 선생님은 성우가 되는데 있어서 실력을 가장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점들과 장점들을 마치 MRI를 찍듯이 상세하게 파헤쳐서 합리적으로 지도를 해주셨습니다. 가끔 저의 문제점들이 너무 아프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런 치료(?)의 과정이 없었다면 전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을 거예요. 동훈쌤은 또 저의 삶에 대해서도 수없이 돌아보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엄청 열정을 다해서 공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꾸준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건 동훈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배울 것이 많았고 앞으로도 더 배우고 싶은 선생님입니다.


특강으로 수업을 잠시 들은 송대선 선생님과 보컬 트레이닝을 아주 잠시 해주신 김보나 선생님의 가르침, 수업의 연은 없지만 오며가며 반갑게 인사해 주셨던 사성웅 선생님의 미소에도 감사드립니다. 그 모든 가르침들 중 단 한 조각이라도 없었다면 전 합격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고,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식사도 하고 연습도 했던 학원의 모든 지망생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게 가장 많은 격려를 해주셨기 때문에 가장 감사하기도 합니다 ㅜㅜ 저의 가난한 실력을 알면서도 애써 많은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하게 성우의 길을 걸어가시는 분들 모두 기쁜 소식을 듣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여러분과 함께 같은 마이크를 쓰며 연기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애정합니다! 감사합니다!